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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클팍 박영주 x 앙티수 남성숙 선교사의 피지선교 이야기 The mission stories of Uncle Park and Aunty Su in the South Pacific Islands

연재 [빈들의 양식] #9

  • 2021.09.02 07:03
  • 박영주의 글

박영주의 사복음서 스토리 

「벤 아담」책과 짝을 이루는 

큰 그림 성경 해석과 인사이트(insight)

 

제9과

 

제목: 갈릴리 사역본부 가버나움

        (마4:12-22, 눅4:16-30)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유다 지역을 떠나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 가나에 도착한 예수는 제자들과 헤어져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고향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성전 폭력 사건으로 종교 지도자들과 대립각을 세운 예수를 배척했고 죽이려고까지 했다. 예수는 가족들과 가버나움으로 이사했고 그곳을 사역본부로 삼아 전임 사역 제자들을 정식으로 불렀다.

 

☞ 상황과 배경 「벤 아담」 53-57, 84-86, 116-124 참조

 

제자들을 부르심

☞ 관찰 및 토의 질문

 

1. 예수가 고향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마4:13) 그 이유에 관하여 마태의 기록(마4)과 누가의 기록(눅4)은 어떻게 다른가?

 

2. 시돈과 두로가 있는 ‘이방의 갈릴리’는 어떤 지역이며(마4:15), 갈릴리 지역에서 가버나움 성읍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한가?

 

3. 예수가 나사렛 회당에서 읽은 성경은 어디이며 생략한 내용은 무엇인가? (사61:2) 나사렛 사람들은 왜 예수를 죽이려고 했는가?

 

4. 예수가 가버나움에서 전임 사역자로 불렀던 제자들은 누구인가? 예수가 갈릴리 촌사람들을 제자로 부를 때 한 집안 형제들을 모두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5. 주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는 일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무엇일까?

 

☞ 본문 해석 노트

 

1. 예수는 갈릴리 지역에서 제자 대부분을 불렀고 그곳에서 주로 사역했다.

 

세례요한의 투옥 사건 직후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지역으로 떠났다. 두려움이나 안전을 위한 도피가 아니었다. 갈릴리를 사역의 주된 무대로 삼아 그 중심 도시 가버나움을 선교 본부로 삼고자 했다. 예루살렘은 공생애 끝에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할 곳이었다. 대부분의 예수 제자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지역 출신들이었다.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 사람들은 스스로 의인들이었으며 가진 자들이었다. 변방의 갈릴리 사람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무식한 촌사람들이었다. 갈릴리 사람 중에도 예수를 인간적으로만 알았던 나사렛 사람들은 그를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다. 인격적인 예수는 그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떠나갔다. 예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다(마9:13). 자칭 의인은 은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죄인만 온몸과 마음으로 회복과 변화를 갈망한다.

 

2. ‘흑암에 앉은 백성’이 빛을 사모하며 복을 받는다.

 

갈릴리 사람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들’(마4:16)이었다. 우상숭배로 악명 높은 두로와 시돈이 가깝고 많은 이방인이 드나들며 거주하는 갈릴리 지역은 종교적으로 흑암의 땅이었다. 정치사회 경제적으로도 소외된 변방이었다.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 것 없는 그들은 가난한 심령으로 빛을 사모하는 사람들이었다. 흑암의 경험이 없으면 빛을 사모할 수 없다. 소망 없이 자포자기하며 흑암 중에 절망하는 그들에게 예수가 빛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빛 되신 주님을 만나 은혜를 알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참 빛은 없다. 삶의 의미, 자유함, 행복은 그 빛으로부터 온다. 예수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강론할 때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왔다(사61:2a)”라고 했다. 그의 초림은 심판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재림의 때를 의미하는 “보복의 날 선포(사61b)”를 생략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다.”(고후6:2)

 

3.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그의 가족 공동체다.

 

예수는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제자로 불렀다. 한 집안에 두 아들 중 하나는 가정을 돌보도록 남겨두지 않았다. 편중되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주님께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모두 형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과 상관없이 한 형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관계는 혈통적 출생보다 훨씬 영원한 관계다(요1:13). 예수는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왔을 때 “누가 내 모친이며 형제냐?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마12:46-50)라고 했다. 혈통적 육신의 가족보다 신앙공동체 가족의 본질적 관계의 예를 보여 주었다. 예수 공동체인 교회는 가족 공동체이다. 왕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 나라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4. 부르심을 받은 제자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아야 한다.

 

“나를 따라오라”라는 말씀은 내가 가진 배와 그물의 ‘버림’과 나의 자리에서 ‘떠남’을 전제한다. 이제 제자들이 잡아야 할 것은 ‘세상 고기’가 아니라 ‘사람’이 대상이었다. 제자는 선생 된 주님과 마음을 함께하고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동행을 ‘결단’해야 한다. 신앙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전 생애와 목숨을 걸고 좇아야 할 영원하고 본질적인 삶의 내용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무조건’ 따라오라 했고 제자들은 ‘영원히’ 좇아가겠다고 응답했다. 내일 염려로 현재의 출발을 주저하지 않았다. 제자는 생각이 아니라 ‘버림’과 ‘떠남’의 행동으로 주님을 따라야 한다.

 

☞ 나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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