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인도인 정치 사회 역사적 배경

사탕수수와 설탕 공장 계약 노동자들로 인도에서 피지로 건너온 인도-피지인들은 5년 뒤 그들의 1차 계약은 종료 되었고 독립적으로 인도인 농부들이 땅을 임대해서 사탕수수와 목화, 담배 재배, 벼농사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도 본토에서처럼 직업을 구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땅을 임대하여 느슨한 형태의 정착촌을 이루었고 가능한 모든 종류의 생계를 위한 직업을 찾았다.
1920년 계약기간이 끝난 뒤 인도-피지인들의 직업은 다양하게 변했다. 상점의 수위, 사무원, 공무원, 외교적 도우미등 상업부문에 큰 붐을 일으킨 것은 1930년대였는데 인도 본토에서 주로 사업 이민자로 많은 사람들이 건너왔다. 그 후 1940년대에 인도-피지인들은 피지 토착민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고자 하는 움직임이 진행되었고 2차 대전 후 인도-피지인들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더욱 조직화 되었고 교육부문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사업가들과 전문직 종사자들의 연구가 크게 증가되었으며 많은 젊은 인도-피지인들이 의사, 변호사, 교사, 국가 발전 기획가가 되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나갔다. 그들 중에 오랫동안 야당 당수를 지낸 자이람 레디(Jai Ram Reddy)와 직전 수상을 지낸 마헨드라 차우드리(Mahendra Chaudhry)가 있다.
피지는 96년간의 영국 식민지로부터 1970년 독립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다인종 주의를 표방하는 연합당을 이끌었던 수상 카미세세 마라(Ratu Sir Kamisese Mara) 밑에서 인도-피지인들은 그런대로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보수주의자들이 일어나 인도-피지인들을 인도에 송환할 것을 주장하면서 두 종족간의 관계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에 인도-피지인들은 피지 노동당(Fiji Labour Party)을 창당하여 1987년에는 인도-피지인 국가연맹당(Indo-Fijian National Federation Party)과 연대하여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Dr. Timoci Bavadra 내각은 주로 피지언들이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인도인 집권당으로 인정하였다.
1987년 Bavadra 정부는 람부카(Sitiveni Rabuka) 중령이 주도한 쿠데타군에 의하여 전복 되었다. 그리하여 1990년에 토착 피지인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도록 하는 편파적인 인종차별적 헌법을 제정하고 람부카는 선거를 통해 수상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1990년대에 수천명의 전문직 인도-피지인들이 피지를 떠났다.
후에 계속되는 국내외 압력으로 1997년에 비록 국회의원 의석수는 종족별로 배정하는 법은 존속했지만 전보다는 공평한 새 헌법이 개정 공포되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5월 선거에 람부카는 참패하고 피지노동당의 마헨드라 차우드리(Mahendra Chaudhry)가 첫 인도-피지인 수상으로 선출 되었다. 그러나 2000년 조지 스페이드(George Speight)가 이끄는 쿠데타로 인도-피지인 수상의 새 정부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복 되고 말았다. 1997년 헌법은 폐기되었고 군부에 의해 지명된 토착 피지인 중심의 임시 정부가 탄생되었다.
또다시 많은 인도-피지인들이 피지를 떠났고 일부는 법정 투쟁을 시도하며 위기에 도전하였다. 사탕수수 노동자 찬드리카 프라사드(Chand rika Prasad)가 법원에 제소한 법안이 승소하여 2000년 11월 대법원은 5월 쿠데타는 비합법적이며 하야한 라투 마라(Ratu Sir Kamisese Mara) 의 대통령직과 1997년 다인종 헌법은 유효하다고 판결함으로 임시 정부 수반인 가라세(Qarase) 수상은 법적 근거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군부와 대추장회의가 상고하였고 2001년 3월 상고 법원은 1997년 헌법을 재확인 지지하면서 2001년 8월 총선을 치루었다.
그 결과 피지 토착민 당(SDL)이 71석 중 32석을 확보하여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가라세(Qarase)는 다당 연립 내각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가라세는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27석을 차지한 인도-피지인의 정당인 노동당을 요직에서 배제시켰다. 그리하여 두 인종 간 긴장 상태가 고조되었다.
2006년 가라세 정부와 군부가 여러 가지 문제로 대립하였는데 군사령관 바이니마라마(Bainimarama)가 10월 정부가 추진하던 토지관계법인 골리골리법안 철회 아니면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였고 가라세는 오히려 군사령관을 해임하려하자 12월 5일 군에 의한 무혈쿠데타가 일어났다.
미국과 영연방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바이니마라마는 군사령관과 수상을 겸직하며 새로이 과도 내각을 구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2009년 총선을 약속하며 구 가라세 내각의 부정부패 척결의 기치를 들었다.
(박영주의 박사학위 논문- 에서 발췌, 2007년)
- 인도 피지인의 超越的 實在들에 대한 認識과 實存的 삶에 대한 宣敎的 應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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