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9 [광야의 만나]
박영주의 「모세와 함께 시간여행」 책과
짝을 이루는 묵상 노트
제9과
제목: 대홍수 (창6-9장)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노아 홍수 사건 스토리는 심판 예고로 시작하여 새로운 언약으로 맺는다. 심판의 원인은 창조주가 계시한 선을 따라 살지 않고 세상과 자기 기준에 따라 사는 악 때문이었다. 대홍수 사건의 핵심 주제는 심판 자체가 아니라 새 세상에서 율법과 언약으로 통치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중과 선포다.
☞ 관찰 질문
1. 노아시대 대홍수는 역사적 사실일까? 성경은 그 사건이 발생한 때를 언제라고 하는가? (창7:11)
2. 비는 며칠 동안 내렸으며 물은 얼마 동안 온 세상을 덮었는가? 노아 가족은 어떻게 대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6:8-9)
3. 노아 대홍수의 원인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6:1-7)
4. 홍수 후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5. 노아 홍수를 통한 하나님 말씀의 주제는 무엇인가? (9:1-17)
6. 하나님의 언약에 나타난 그의 성품은 어떠한가? (9:11-17)
☞ 본문 해석 노트
1. 하나님이 인간 창조를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
‘하나님이 한탄하셨다(창6:6a)’는 말은 가슴 아픔의 인간적인 표현이며, ‘하나님이 근심하셨다(창6:6b)’는 말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하나님의 의중을 드러낸 말이다. 하나님이 땅 위에 사람 지음을 한탄한 세 가지 이유는 셋 계열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인 계열인 사람의 딸들과 섞임 곧 하나님 사람들의 정체성 상실(6:2), 인간이 하나님 형상인 영성을 잃어버리고 육신(mortal)이 된 것(6:3), 생각이 항상 악함(6:5), 이는 어떤 행위 이전에 존재적 죄인됨의 표현이다. 의의 나무가 아닌 ’죄의 나무‘라 할 수 있다.
2. 하나님이 계시한 선은 세상의 도덕 윤리 개념
성경(6:9)은 노아를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했다. 인간이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을까? ’의(義)‘에 관한 개념 이해를 돕는 관련 성구가 바로 앞 5장에 셋 계열 족보 중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죽음을 뛰어넘었다는 표현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의인이었다. 또 반대 개념인 죄가 선악과(3장)에서 처음 나타난다. 선과 악의 구분 기준에 관한 개념을 제공하는 선악과는 피조 세계에 관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소유권 선언이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앎과 고백이다. 선악과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하는 그 의미를 알고 고백하는 것이 선이며 이에 대한 무지와 거부가 악이고 죄다. 노아를 ’의인‘이라 칭할 때 ’의‘는 윤리 개념을 넘어 신앙적 개념이다.
3. 노아의 방주 공동체는 예수와 성도들의 교회 공동체 모형이다.
노아는 완전하고 의로워서 선택되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고 구원받았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라고 했다. 노아와 방주 안의 가족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공동체 유비다. 선택된 생명공동체요 칭의로 말미암은 의인 공동체다. 교회는 착한 사람들 모임이 아니라 선택된 은혜 공동체다.
* 칭의(稱義, justification)
4. 대홍수 사건은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은혜의 복음이다.
노아 대홍수 사건 스토리는 심판을 위한 심판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작에 방점이 있다. 셋 계열의 ’섞임‘이 심판의 원인이 되었고 하나님은 ’구별(거룩)‘을 원하셨다. 노아 스토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새 언약(9장)으로 마무리된다. 그 명령은 창조주의 주권 선포가 담겨 있는 율법이었다. 또, 무지개 언약은 희생 제사와 방주 구원으로 죄 문제를 처리하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약속의 상징이었다. 구별된 삶은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고백하며 그 앞에 예배자로 반응하면서 사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답게 선한 방향성으로 성결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인생의 순리이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 나의 노트(묵상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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