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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클팍 박영주 x 앙티수 남성숙 선교사의 피지선교 이야기 The mission stories of Uncle Park and Aunty Su in the South Pacific Islands

연재10 [광야의 만나]

  • 2021.03.19 05:49
  • 박영주의 글

박영주의 「모세와 함께 시간여행」 책과

           짝을 이루는 묵상 노트

 

제10과

 

제목: 바벨탑 (창11:1-9)

내가 붙이는 제목 :

바벨탑

☞ 본문 요약

노아 대홍수 이후 니므롯 후예들은 시날 땅에 지구라트 곧 바벨탑을 쌓았다. 그것은 창조주 대신 인간이 부리고 싶은 신을 만들어 섬긴 엇나간 종교적 심성이었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게 하여 사람들을 온 땅에 흩어지게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 관찰 질문

 

1. 바벨론의 아카드어 ‘바비루’는 무슨 뜻인가?

(아카드어 bab은 ‘문’이라는 뜻이며, ilu는 ‘신들’이란 뜻임)

 

2. 시날(바빌론) 땅에 쌓은 바벨탑의 용도는 무엇이었는가?

 

3. 니므롯 자손들이 바벨탑을 높게 쌓으려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4. 사람들의 언어가 혼잡게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5. 언어의 혼잡과 흩어짐은 어떤 형태의 심판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당시 지구환경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6.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인류는 언제 무슨 사건으로 회복이 이루어졌는가?

 

☞ 본문 해석 노트

 

1. 바벨탑 사건은 니므롯 제국의 사회상과 시대정신을 보여 준다.

 

바벨탑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함의 후예 니므롯이 건축했다. 첫 니므롯은 노아의 4대손으로 노아 이후 100년쯤 지난 때 등장했다. 언어의 혼잡으로 인류를 온 땅에 흩어지게 한 바벨탑 사건은 노아의 6대손 벨렉 시대였다(창10:25). 노아 대홍수 후 200년쯤 지난 때였다. 바벨탑으로 불린 바빌론 지구라트는 마르둑Marduk 신을 섬기는 신전이었다. 마르둑 신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처럼 신들의 왕으로 여겨졌다. 니므롯은 마르둑의 아들이며 신으로 자처했다. ‘바벨’의 아카드어 ‘바비루’는 신들의 문이라는 뜻이었고 니므롯은 하늘과 땅을 오가는 왕으로 불렸다.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을 입어 타고난 창의성으로 문명을 일으키며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니므롯과 그 후예들은 창조주를 섬기기보다 다른 신을 찾았다. 홍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지개 언약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의 심판에 대비한 자구책으로 불신앙의 상징 바벨탑을 쌓았다. 인간을 신격화하고 창조주로부터 독립하려는 가인 계열의 사회상과 시대정신의 단면이었다.

 

2. 하나님으로부터 엇나간 사회는 고립과 분리의 심판 아래 있다.

 

선악과 사건 이후 인류는 가인 계열과 셋 계열로 나뉜다. 전자는 죄로 말미암아 신과 생명적 관계가 끊어진 자들이고 후자는 희생제사법을 통해 그 관계가 회복된 자들이다. 창조주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바벨탑 사건의 언어 혼잡과 인류의 흩어짐은 창조주와의 수직적 불통이 공동체 사회의 수평적 불통을 낳은 그림이다. 고립은 분리이며 죽음을 의미하기에 그 심판은 곧 죽음의 심판이었다. 창조 과학자들은 이때가 빙하시대였고 급격한 생태계 변화에 적응하느라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이뤄졌다고 한다. 창조주의 개입으로 일어난 일회성 변화는 그의 은혜였다. 흩어진 인류는 그때 인종 구분이 생겼고, 대홍수 이후 계속된 지구환경의 악화는 인간 수명의 단축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신격화와 우상숭배가 빚은 심판이었다.

 

3. 바벨탑 심판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회복이 시작되었다.

 

가인 계열의 니므롯 제국은 하나님이 꿈꾸는 나라가 아니었다. 모델 나라가 필요했다. 하나님의 이상 국가 모델은 이스라엘이 유형 국가 하나님 나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 셋 계열의 고백과 정체성이 분명한 나라다. 하나님의 백성이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도 하나님 뜻을 벗어나지 않는 성숙한 사회다. 공자는 이것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단계의 삶이라고 정의했다. 역사 속 이스라엘은 그 청사진만 보이고 실패했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회복이 시작된 이상 국가 하나님 나라는 천년왕국으로 완성될 것이다.

 

☞ 나의 노트(묵상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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