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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클팍 박영주 x 앙티수 남성숙 선교사의 피지선교 이야기 The mission stories of Uncle Park and Aunty Su in the South Pacific Islands

연재 [빈들의 양식] #20

  • 2021.11.04 06:40
  • 박영주의 글

박영주의 사복음서 스토리 

「벤 아담」책과 짝을 이루는 

큰 그림 성경 해석과 인사이트(insight)

 

제20과

제목: 은둔여행 클라이맥스

 (마17:1-20, 막9:2-29, 눅9:28-43)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예수와 제자들의 가이사랴 빌립보 MT는 한 주간 정도 진행되었다. MT의 끝에 은둔 여행 마지막 사건은 변화산 체험이었다. 예수는 세 제자를 따로 불러 헬몬산 자락 한 산, 변화산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영광의 광채를 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가 함께 대화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산 아래서는 다른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 상황과 배경 「벤 아담」 235-239

 

헐문산 기슭 변화산

☞ 관찰 및 토의 질문

 

1. 예수와 제자들의 은둔 여행 클라이맥스는 십자가 죽음 고지와 부활의 영광 경험이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2. 예수를 따라 변화산에 오른 세 제자는 누구였는가? 왜 그들 셋만 특별히 선택받았을까?

 

3. 영광의 광채 가운데 보인 모세, 엘리야, 예수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4. 변화산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며 베드로는 예수에게 무슨 말을 했으며 그 말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5. 산 아래 다른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실패의 원인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의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또 그 중심 단어의 표현이 복음서마다 어떻게 다르며 핵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 본문 해석 노트

 

1. 은둔 여행 클라이맥스였던 변화산 광경은 부활에 대한 시청각적 예언이었다.

 

예수는 은둔 여행 마지막에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밝혔다. 단순한 그의 죽음 예고가 아니라 제자들이 그 의미를 알기 원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사실에 관한 확실한 인식을 위해 시청각적 부활 예언을 보여 주었다. 영광 아닌 죽음 예고에 낙담하며 실의에 빠져있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부활을 맛보았다. 부활은 예언된 메시아 죽음의 의미를 해석해준다. 예수의 죽음은 끝도 실패도 아니다. 부활이 이를 증명한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의 말씀과 부활의 실재성에 대한 성경의 증언이며 성부 하나님의 증언이었다.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성을 가졌고 엘리야는 모든 선지자의 전형이었다. 그들은 구약성경 전체를 대표했고 그들의 예수 메시아 증언은 구약성경이 그가 메시아임을 증언했다는 의미다. 모세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 경륜을 깨닫고 구원자를 기다렸다. 예수는 모세가 자신에 대하여 기록했다고 했다(요5:46). 구약성경의 모든 역사는 메시아를 향하고 있다. 또 변화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는 하늘의 음성은 성부 하나님의 증언이었다. 부활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확실한 실재이다.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었고 성경과 하나님이 증언했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에 관하여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하여 확증을 받았기에 죽어보지 않아도 확신한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요20:29).

 

2. 부활의 소망은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를 확증해 준다.

 

예수를 따라 변화산에 오른 제자는 셋이었고 나머지는 산 아래 있었다. 제자 공동체의 대표성을 띤 세 제자의 선택에 관하여 우리는 예수의 편애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주권에 속한 문제다. 열두제자의 대표자로서 베드로는 변화산 부활의 체험으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할 수 있었다. 야고보는 열두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으며, 요한은 로마의 핍박에 꺾이지 않고 오래 살면서 박해받는 성도들의 신앙적 표상表象이 되었다. 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가 말한 ‘음부의 권세’가 무엇인지 확실히 체험했고 요한은 계시록의 서막(계1:9-19)을 열었다. 부활은 죽음의 공포와 허무한 삶에 대한 궁극적인 최후 승리다. 천국과 부활, 영생의 소망이 확실하면 죽음, 질병, 실패, 그 무엇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다. 최후 승리가 보장된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찬송하는 사람들이고, 확정된 최후 승리를 알고 인생의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람들이다. 감사와 기쁨으로 일상을 꽃피우는 힘은 부활의 소망에서 온다.

 

3. 성도는 신령한 영적 체험 자체를 만족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베드로는 변화산 위의 황홀경을 바라보며 최후의 초막절을 연상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최후의 초막절에 메시아가 온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베드로는 메시아인 예수의 통치가 가까웠다고 생각하며 부지불식간에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며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다. 유한한 인간은 제한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으로 초자연적인 신비에서 오는 희열을 추구한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깊은 영적 체험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주님의 사람들은 갈등과 싸움이 있는 산 아래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도록 일하신다. 그리고 그의 자녀 된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성도가 이 험난한 세상에 살아야 할 존재 이유다.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4. 영적 활력을 주는 신비한 능력은 예수 생명 자체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인에게 신비한 경험이 전혀 없다면 그 신앙은 무기력하게 된다. 변화산 위의 제자들은 신비 체험으로 충만했고 산 아래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힘을 잃고 위축되었다. 신비한 비밀을 간직한 자가 주님께 충성할 수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신비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충성해야 한다(고전4:1-2).

예수는 제자들에게 변화산의 신비 체험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신비 체험은 믿음에 유익을 주지만 신비주의는 위험하다. 신앙이 기적과 환상과 신비 체험에 중독되면 영혼이 병든다. 바울은 많은 신비한 기적들을 경험했지만, 그것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을 설명하고 가르치며 전하는 일에 주력했다. 교회는 신비주의나 윤리 강론이 아닌 복음이 지배해야 한다.

갈릴리 전도 때 축사逐邪를 경험했던 제자들은 변화산 밑에서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예수께 물었다. 신비한 능력 행함의 은사는 항구적이지 않다. 예수의 대답에 대하여 마태는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표현했으며 마가는 ‘기도’를 덧붙였다. 그러면 “믿습니다”를 외치고 기도를 많이 하면 된다는 말인가? 믿음과 기도의 본질은 예수의 생명이다. 성도는 다만 예수 생명의 통로이며 예수 능력의 도구이다. 내 안에 예수 생명에 대한 인식이 믿음이며, 그 생명의 능력이 역사하도록 사모하는 믿음의 기대가 기도다. 예수 생명의 역사를 막고 서있는 내 자아의 내려놓음이 기도의 본질이다. 주여, 나의 빈 잔을 채우소서.

 

☞ 나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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