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가 된 마약 딜러
- 2010년5월 방파선교회<부르신 곳에서 / 쿰란출판사>책 출판 을 위해 기고한 글에서 발췌
“웰컴 백 투 피지!” 나는 세루를 힘있게 포옹하였다. 너무도 반가웠다. 10년 넘게 솔로몬 선교사로 사역을 잘 하고 있는 나다 세루(Naca Seru) 가정을 본국 사역을 위해 불렀다. 나의 선교의 첫 열매요 우리 선교훈련학교 최초의 선교사인 세루 선교사는 이제 본교 교수요원으로서 특히 다수의 솔로몬과 바누아투 유학생들을 전담하여 그들의 언어로 그들을 상담하며 섬기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 마가레타와 크리스틴, 그리고 유치원 다니는 아들 자메사를 앞세우고 우리 훈련 센타로 들어서는 그들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내가 세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23세의 청년이었다. 1995년 내가 피지 선교사로 파송받아 온 다음 해인 1996년 그는 남태평양선교훈련원 1학년 학생이었다. 졸업 후 솔로몬에서 1년간 인턴쉽 사역을 했고 돌아온 그에게 우리는 장기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권유했다. 그의 인턴쉽 현지 지도 목사였던 솔로몬 호니아라 교회 담임 목사가 세루의 인턴쉽 평가서가 보내 왔다. 세루의 충성스런 사역에 감사한다며 그를 정식 선교사로 파송해 줄것을 요청해 왔다. 숙소는 현지에서 제공해 주겠다는 호혜 조건까지 붙여왔다.
“세루, 네가 장기선교사로 파송받으려면 우선 결혼부터 해야해. 솔로몬 선교사로 정식 파송받기위해 결혼이 주님의 인도하심의 한 싸인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꼭 선교 비젼이 있는 자매를 선택해야해, 알겠지?”
그 후 세루는 6개월이 채 안되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고향 동네에 알고 지내던 자매기 있었는데 결혼 문제가 급진전된 것이다. 로(Lo) 라는 자매는 오랜만에 만난 세루의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이 너무 반가웠고 그와 함께 어머니의 나라 솔로몬 선교사로 함께 가기로 결심하고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세미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우리는 함께 보며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만만치 않은 항공료와 후원비도 예기치 않은 손길들을 통해 채워 주셨다. 세루는 인턴쉽에서 돌아 온지 5개월 만에 1999년 4월 결혼식을 올렸고 7월29일 정식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고 솔로몬으로 떠났다.
그는 10여 년 동안 선교 사역을 하면서 많은 사역의 열매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불우 청소년 사역, 교도소 선교, 특히 솔로몬 내전으로 부족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가를 대표해 중재하는 중임을 맡기도 했고,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스포츠 선교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세루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매년 우리 남태평양선교훈련원으로 유학을 오는 청년들이 많았다. 한 알의 밀알이 30배 60배 백배로 결실케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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